스마트폰과 디지털 기술이 일상 전반을 좌우하는 사회에서 고령층의 ‘디지털 문해력’ 격차가 정서적 안녕과 사회적 고립감의 정도까지 결정한다는 실증적 연구 결과가 확인됐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의 패널 조사 분석에 따르면, 디지털 기기 활용 역량이 높을수록 외로움과 고립 위험군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뚜렷하게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노년층 디지털 문해력 향상이 단순한 편의 증진을 넘어 초고령화 사회의 최대 난제인 ‘노인 고립’을 해결할 중대한 열쇠임을 시사한다.
노년층 디지털 격차, ‘1인 가구·고령 여성·농어촌 거주자’가 가장 취약
디지털 기술이 삶의 방식을 바꾸면서 노년층의 ‘디지털 양극화’는 뚜렷해지고 있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발표한 ‘한국 어르신의 일과 삶 패널(KSWL)’ 정보그림 5월호 조사 결과에 따르면, 노인 일자리 참여자들의 디지털 문해력은 성별, 연령, 거주지, 가구 형태 등에 따라 현저한 차이를 보였다.
우선 성별 격차를 보면 남성 참여자의 디지털 문해력 평균 점수는 1.72점(3점 만점)으로, 여성 참여자(1.42점)에 비해 0.3점 높게 나타났다. 연령에 따른 편차도 가팔랐다. 상대적으로 젊은 축에 속하는 60~64세 집단은 2.04점을 기록하며 상대적으로 우수한 디지털 활용 수준을 보였으나, 65~69세는 1.59점, 70~74세는 1.34점으로 연령이 높아질수록 디지털 활용 능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거주 지역과 가구 형태 역시 양극화를 초래하는 주요 변수다. 도시 지역인 동(洞) 거주자의 디지털 문해력은 1.59점으로 농어촌인 읍·면 지역 거주자(1.32점)를 크게 웃돌아, 지역 간 디지털 교육 환경 격차가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가구 형태별로는 노인 부부가 자녀와 함께 거주하는 경우의 점수(1.79점)가 가장 높은 반면, 홀로 삶을 꾸려가는 1인 가구 참여자는 1.38점으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는 주변에 스마트폰 사용법을 물어보거나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동거인의 유무가 노년층의 디지털 적응에 핵심적인 안전망 역할을 하고 있음을 실증한다.
디지털 문해력과 노년기 고립·외로움의 상관관계
이번 조사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대목은 디지털 문해력 수준이 노년기 삶의 질을 좌우하는 정신건강 지표와 직접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스스로 느끼는 외로움의 수준이 낮은 ‘외로움 저위험군’의 디지털 문해력 점수는 1.55점으로, 외로움을 일상적으로 겪는 ‘고위험군'(1.39점)보다 높게 나타났다. 또한 대인관계 단절 등으로 고통받는 ‘사회적 고립 저위험군’의 디지털 문해력 역시 1.54점으로 고위험군(1.35점)을 상회했다.
이는 디지털 활용 역량이 현대 사회에서 타인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고립을 방지하는 일종의 사회적 생존 도구가 되고있음을 보여준다. 디지털 기기를 유연하게 다루는 노인들은 카카오톡 등 모바일 메신저로 친밀한 이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온라인 커뮤니티나 취미 정보를 활발하게 탐색한다. 반면 디지털 도구 사용법이 낯선 이들은 모바일 결제나 예약, 키오스크 사용 단계부터 가로막혀 외부 활동 자체가 위축되고, 장기적으로는 사회적 관계망에서 배제되는 악순환에 빠진다. 비대면 플랫폼 중심의 사회 구조 아래서 디지털 소외는 단순한 기술적 낙오를 넘어 삶의 질과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고립을 낳고 있다.
일자리 성격 따라 갈리는 디지털 격차
비교적 디지털 기기 수용도가 높고 활동적인 1차 베이비부머(1950~1964년생) 세대조차 공공 및 행정 성격의 디지털 영역에서는 심각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전반적인 디지털 문해력 평균 점수는 1.74점으로 노인 일자리 참여자 평균(1.46점)을 앞섰다.
그러나 세부 영역별로 톺아보면 양쪽 모두가 통과하지 못한 고난도의 장벽이 확인되었다. 스마트폰 도구형 앱을 검색하고 설치하는 ‘기본 영역’에서는 베이비부머가 2.04점, 일자리 참여자가 1.69점으로 무난한 점수를 보였으나, 정부24 등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민원 서류를 발급받거나 세금 및 공과금을 납부하는 ‘행정 영역’에서는 각각 1.49점과 1.31점이라는 매우 낮은 성적표를 받았다. 복잡한 보안 프로그램 설치와 본인 인증 체계가 노년층 전체에 극심한 진입 장벽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또한 노인 일자리 사업 유형에 따른 양극화 역시 선명했다. 취업 지원과 밀접해 실무 능력을 요구하는 ‘현장실습 훈련 지원사업’ 참여자의 디지털 문해력은 1.99점에 달했으나, 취약계층 지원 등 공익 성격의 ‘노인공익활동사업’ 참여자는 1.27점으로 하위권에 머물렀다. 참여자가 맡은 사회적 역할과 경제적 지위가 디지털 역량과 깊이 맞물려 있음을 드러내는 지표다.
디지털 문해력, 노년의 고립을 막는 복지 안전망
오늘날 노년층의 디지털 문해력 결핍은 생존과 직결된 중대한 사회적 위기다. 더 이상 흥미 위주의 단순한 스마트폰 기본 작동법 교육에 머물러선 안 된다. 교통 예약이나 민원 서류 발급처럼 실생활에 당장 필요한 ‘행정·생활 맞춤형 생존 디지털 역량’ 강화 체계를 다각도로 구축해야 한다. 아울러 복지 혜택과 디지털 소외의 사각지대에 놓여 사회적으로 고립되기 쉬운 독거노인과 농어촌 지역 시니어 가구에 대한 밀착형 정보 접근 지원 정책이 시급하다. 디지털 문해력은 단순한 개인의 기능이 아니라 노년의 고립을 막고 온전한 일상을 보장하는 ‘기본적 복지 권리’라는 시각의 전환이 절실하다.
글 | 백승리 기자(report@senioredup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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