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후견제도는 우리 사회 치매 환자의 의사결정 지원과 500조 원대로 추산되는 자산 보호를 위한 핵심 장치입니다. 이 후견제도가 시행된 지 7년이 지났지만, 현장에서는 사실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특히 정부가 성년후견제도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한 치매 공공후견사업은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에 직면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치매 후견제도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 후견 행정의 실행 주체를 재정비하고, 법원과 지방자치단체 간의 업무 분담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제언합니다.
치매 후견제도의 한계: ‘치매머니’ 관리 방안 시급
고령 치매 환자의 자산, 이른바 ‘치매머니’가 2050년경 50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면서, 이들의 재산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의사결정을 지원할 방안이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공공후견사업 실효성 부족 지적
치매 공공후견사업은 치매 노인이 직접 후견인을 선임하기 어려운 경우 지방자치단체가 후견 절차를 지원하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 사업이 사실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수도권의 한 치매안심센터 관계자는 “공공후견사업은 실효성을 잃고 치매 환자는 지방자치단체 복지 사례 관리의 일부로 흡수된 상태”라고 지적했습니다.
포럼을 통한 정책 개선 필요성 제기
지난 7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등이 개최한 포럼에서는 치매 발병 전후를 아우르는 통합적 재산 관리 체계와 치매 후견제도 개선 필요성이 제기되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사전 후견 의향서 작성 유도, 공공후견인 양성 지원, 성년후견지원신탁 제도화 등을 주요 과제로 꼽았습니다. 치매 환자 자산 관리의 윤리적 쟁점에 대한 논의는 이 문제의 중요성을 더욱 부각합니다.
‘치매안심센터’에 맡겨진 후견 업무의 구조적 문제
치매 후견제도가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전문성이 부족한 치매안심센터가 공공후견사업을 맡게 된 구조적 한계 때문이라는 지적입니다.
보건 조직에 부여된 법률 행정 업무
배광열 사단법인 온율 변호사는 “치매안심센터는 본래 의료적 관리 중심의 보건 조직으로, 복지나 법률 지원은 전문 영역이 아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게다가 후견 업무가 안심센터 업무 중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하여, 현장에서는 부수적인 업무로 취급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최근 논의 중인 ‘치매머니 공공신탁’ 제도에도 법률·금융 지식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공공후견과 비슷한 문제가 되풀이될 우려를 낳습니다.
일본식 ‘후견지원센터’ 모델의 한계
일반 시민들이 치매 여부와 관계없이 후견 상담을 보편적으로 받을 수 있는 일본식 ‘성년후견지원센터’ 모델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거론되기도 하지만, 전문가들은 회의적입니다. 배 변호사는 “결국 지자체 안에서 누가 이 일을 맡을 것인가의 문제”라며 “일본 역시 지자체 중심 후견센터를 추진했지만 아직까지 눈에 띄는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일본의 시민후견은 후견인 선임 비용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한국처럼 체계적인 공공후견인 양성 시스템을 갖춘 모델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치매 후견제도 정상화를 위한 ‘멀티 트랙’ 제언
치매 후견제도의 행정 기반을 강화하고 제도를 정상화하기 위해 전문가들은 지자체의 역할 재정비와 함께 선진국형 분담 구조 도입을 제안합니다.
법원-지방자치단체 업무 분담의 필요성
배 변호사는 “한국도 장기적으로 법원은 후견과 관련한 사법적인 판단에 집중하고 지자체가 후견 행정업무를 전담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후견 행정 업무를 법원, 지방자치단체 혹은 정부가 명확히 구분해 분담하는 선진국 모델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독일은 법원과 지방자치체, 민간이 후견 행정업무를 분담하는 상호 보완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영국은 법무부 산하 독립기관인 공공후견청이 후견인 관리·감독 등 후견 행정업무를 운영합니다.
개인 중심에서 법인 중심으로 전환
치매 후견제도의 전문성과 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개인 후견인 중심 구조를 법인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정신질환자 공공후견의 경우 두 개 법인이 480건 이상을 맡아 전문성과 지속성을 확보했지만, 치매 분야는 개인 후견인 중심으로 운영되어 전문성 축적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치매 분야에도 법인 중심 구조를 도입하고, 적절한 법인 발굴과 예산 투입이 시급한 과제로 제기됩니다. 성년후견 법인 운영의 성공 사례는 이 방안의 타당성을 뒷받침합니다.
치매 후견제도, 통합적 개혁이 필요
치매 후견제도가 제 기능을 수행하고 ‘치매머니’라는 거대한 자산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예산 투입을 넘어선 근본적인 행정 구조 개혁이 필요합니다. 법률 전문가들은 법원과 지자체의 역할 분담 명확화, 그리고 전문성을 갖춘 법인 중심의 공공후견사업 전환이 치매 후견제도를 살리는 핵심 방안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치매 후견제도가 모든 치매 환자의 존엄성과 권리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가 되기 위한 사회적 논의와 실질적인 제도 개편이 시급합니다.
백승리 기자(report@senioredup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