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의 무력 충돌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치닫으며 국내 유가 시장을 강타했다. 7일 기준 전국 주유소 경유 가격이 3년 6개월 만에 리터당 1900원 선을 돌파했고, 휘발유 가격 또한 턱밑까지 추격했다. 지정학적 위기가 국내 가격 결정 구조의 취약점과 맞물려 ‘유가 공포’와 ‘오일 쇼크’급 파동을 예고하는 가운데, 이번 사태의 본질과 전망을 긴급 진단한다.
가격 역전과 1900원의 공포, 3년 만의 귀환
7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정오 기준 전국 주유소의 경유 평균 판매 가격은 리터당 1907.04원을 기록했다. 이는 2022년 8월 이후 3년 6개월 만에 1900원 선을 넘어선 수치다. 휘발유 가격 역시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며 1886.75원을 기록, 1900원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특히 서울 지역은 이미 휘발유와 경유 모두 1900원 대 중반을 넘어선 상태다.
유가 공포가 심화되며, 소비자와 기업 모두에게 부담이 커지고 있다.주목할 점은 경유 가격이 휘발유 가격을 앞지르는 ‘가격 역전’ 현상의 재현이다. 통상 세금이 더 낮은 경유가 저렴한 것이 일반적이나, 글로벌 에너지 위기 시 산업용 수요가 견고한 경유의 국제 시세가 더 가파르게 반응하는 특성이 이번에도 반영된 결과다. 이는 물류 운송비 증가로 이어져 전반적인 물가 상승 압력(인플레이션)을 가중시키는 ‘스태그플레이션’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연료비 상승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협, ‘물류 동맥경화’ 현실화
이번 유가 급등의 직접적인 트리거(Trigger)는 미국과 이란의 무력 충돌 격화다. 이란이 전 세계 원유 해상 수송량의 약 20~3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시사하면서 시장의 공포 심리가 극에 달했다. 단순히 원유 생산 차질을 넘어, 수송로 자체가 막힐 수 있다는 우려는 해상 운임과 보험료 급등을 초래하며 국제 유가를 밀어올리고 있다.
국제 원유 시장의 벤치마크인 브렌트유와 서부텍사스산원유(WTI)가 배럴당 80달러 선을 넘어 급등세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동 의존도가 절대적인 한국의 에너지 안보 구조상, 페르시아만의 긴장은 즉각적이고 치명적인 공급 충격으로 전이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싱가포르 현물가 연동제, 변동성 증폭의 ‘메커니즘’
소비자들이 가장 의문을 제기하는 대목은 ‘국제 유가가 오를 때는 즉각 오르고, 내릴 때는 천천히 내린다’는 가격 비대칭성이다. 그러나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내 석유 제품의 가격 결정 구조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국내 정유사는 원유 도입 원가가 아닌, 아시아 역내 완제품 거래의 기준이 되는 ‘싱가포르 국제 석유제품 가격(MOPS)’을 기준으로 국내 공급가를 산정한다.
문제는 이번 사태처럼 공급망 불안이 커질 때다. 국제 트레이딩 시장인 싱가포르 현물 가격은 미래의 불안 심리를 선반영하여 원유가보다 훨씬 민감하고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정유사가 사전에 들여온 원유 재고가 있더라도, 회계상 ‘재조달 원가’ 개념과 연동된 국제 제품가가 오르면 국내 공급가도 시차 없이 상승 압력을 받게 된다. 통상 2주 정도의 반영 시차(Time lag)가 존재하지만, 이번처럼 시장이 패닉에 빠질 경우 그 시차는 급격히 단축되며 소비자 가격에 전가되는 경향이 뚜렷하다.
정부는 유가 급등에 대응해 매점매석 단속과 가격 담합에 대한 엄중 경고를 내놓으며 급한 불 끄기에 나섰다. 그러나 현재의 유가 파동은 국내 유통 단계의 미시적 조정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지정학적 급소와 싱가포르 시세에 종속된 가격 결정 메커니즘이 맞물려 있는 한, 한국 경제는 외부 충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단기적으로는 유류세 인하 폭의 재조정과 알뜰주유소를 통한 가격 견제가 필요하겠지만, 이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지금은 단순한 가격 통제를 넘어 에너지 수급 루트의 다변화와 전략비축유의 적시 방출 시나리오를 점검해야 할 때다. 2026년의 ‘오일 쇼크’는 우리에게 에너지 안보가 곧 경제 생존의 문제임을 다시금 뼈아프게 경고하고 있다.
글 | 백승리 기자(report@senioredup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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