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보건의사 급감으로 농어촌 지역의 일차의료 안전망이 붕괴 직전에 직면하자, 정부가 의료취약지 보건지소 151곳에 의사 대신 ‘보건진료전담공무원(간호사)’을 투입하는 초강수를 두었다.
공중보건의사 인력 급감에 따라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선다. 의료취약지 선별 후 해당 지역에 보건진료전담공무원 배치와 순환진료를 시행하고, 비대면진료·원격협진를 활성화한다.
보건복지부(장관 정은경)는 “지역의료 위기 상황으로 판단, 공중보건의사 의료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긴급 대책을 수립·추진한다”고 보도자료(2025.3.13)에 밝혔다.의정 갈등의 여파와 병역 기피 현상이 맞물리며 올해 신규 편입된 의과 공보의가 98명으로 추락한 데 따른 고육지책이다.
수십 년간 지역의료의 최전선을 지켜온 공보의 제도가 사실상 구조적 한계에 봉착한 가운데, 정부의 이번 대책이 임시방편을 넘어 지역의료 체계의 근본적 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신규 공보의 98명 ‘역대 최저’… 532개 취약지 보건지소의 쪼개기 생존법
보건복지부가 2026년 3월 발표한 긴급 대책의 핵심은 공중보건의사(공보의) 미배치로 인한 농어촌 의료 공백을 최소화하는 데 있다. 올해 의과 공보의 신규 편입 인원은 98명으로, 복무 만료 인원 450명 대비 충원율이 22%에 불과하다. 전체 의과 공보의 규모는 지난해 945명에서 올해 593명으로 대폭 감소했다.
2017년 2,116명에 달했던 것과 비교하면 지역 일차의료 체계가 사실상 마비 상태에 이르렀음을 시사한다. 이에 정부는 민간의료기관이 없고 인접 기관과의 거리가 4km 이상인 전국 547개 읍·면 의료취약지를 선별했다.
해당 지역에 위치한 532개 보건지소 중 도서·벽지 139곳에만 공보의를 우선 배치하고, 의사가 없는 393곳은 지역 여건에 따라 네 가지 유형으로 개편한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151개 보건지소에 도입되는 ‘통합형’ 모델이다. 이곳에는 의과 공보의 대신 일정 교육을 이수한 간호사 출신의 보건진료전담공무원이 배치되어 경미한 의료행위와 91종의 의약품 처방을 전담하며, 기존의 치과·한의과 진료와 결합해 보건지소의 기능을 간신히 유지하게 된다. 이 밖에도 42곳은 아예 보건진료소로 전환되고, 200곳은 보건소에 남은 공보의가 주 2~3회 순회 진료를 도는 방식으로 파행 운영된다.

누적된 복무기간 격차에 의정 갈등이 쏜 치명타
농어촌 보건지소의 의사 실종 사태는 장기간 누적된 구조적 모순이 낳은 예견된 참사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현역 사병과 공보의 간의 불합리한 복무기간 격차다. 사병 복무기간은 점진적으로 18개월까지 단축된 반면, 공보의는 기초군사훈련을 포함해 사실상 37개월을 묶여 있어야 한다. 의과대학 학생들 사이에서는 경력 단절과 긴 복무기간을 피하기 위해 현역병 입대를 선택하는 경향이 뚜렷해졌고, 의대 내 여학생 비율의 지속적인 증가 역시 남성 의무복무자인 공보의 자원의 파이를 구조적으로 줄여왔다.
여기에 2024년부터 촉발된 의정 갈등은 벼랑 끝에 서 있던 공보의 제도에 결정적 타격을 입혔다. 의대 증원 등에 반발한 전공의들의 대규모 병원 이탈과 의대생들의 동맹 휴학 사태가 수년간 장기화되면서, 정상적인 수련을 마치고 공보의로 편입되어야 할 젊은 의사 자원 자체가 아예 증발해 버린 것이다.
복지부는 의대생 교육 공백이 완전히 해소되고 지역의사 인력이 본격적으로 양성되는 2032년에야 공보의 규모가 1,000명대를 간신히 회복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즉, 향후 5~6년 이상은 현재의 기형적인 공보의 부족 사태를 상수(常數)로 두고 국가 지역의료 정책을 전면 개편해야 하는 암담하고 위태로운 현실에 직면한 것이다.
“사라지고 싶은 심정”… 땜질 처방에 짓눌린 보건진료전담공무원
정부는 보건진료전담공무원을 구원투수로 내세우며 급한 불 끄기에 나섰지만, 의료 현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1981년 의료법 특례 규정으로 농어촌 보건의료를 위해 도입된 보건진료전담공무원 제도는 24주 이상의 직무교육을 받은 간호사 및 조산사가 단독으로 1차 진료를 수행할 수 있게 한 제도다.
그러나 졸지에 의사의 빈자리를 오롯이 떠안게 된 이들의 업무 과부하는 이미 인내의 한계치를 넘어섰다. 실제 의료취약지에서 근무하는 한 보건진료소장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지시가 내려오면 무조건 일해야 하는 공무원 신분이지만, 책임과 부담감에 솔직히 사라지고 싶은 심정”이라며 극심한 피로감과 중압감을 토로했다.
또한, 현재 보건진료전담공무원이 합법적으로 처방할 수 있는 의약품이 91개 성분으로 엄격히 제한되어 있어, 복합적인 고령층이 대다수인 농어촌의 만성질환 수요를 온전히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비판도 거세다. 복지부는 만성질환 관리를 중심으로 처방 의약품과 진료지침을 대폭 확대 개정하겠다고 밝혔으나, 이를 두고 의료계 내에서는 안전성 논란과 직역 간 업무 범위 갈등이 재점화될 소지도 다분하다.
나아가 정부는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비대면 진료와 민간 의료기관과의 원격협진을 핵심 보완책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디지털 기기 활용에 취약하고 대면 진료를 선호하는 농어촌 고령층의 현실을 깊이 고려할 때 단기간에 실효성을 담보하기는 극히 어렵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지역의료의 붕괴는 더 이상 다가올 미래가 아닌, 이미 도래한 참담한 현실이다. 151곳의 보건지소에 보건진료전담공무원을 투입하는 이번 조치는 초유의 공보의 가뭄 속에서 일차의료의 명맥을 잇기 위한 불가피한 응급처치다.
그러나 간호사의 헌신에만 기대어 무너지는 댐을 손가락으로 막는 식의 대응은 결코 지속가능할 수 없다. 공보의 제도가 과거의 유산으로 전락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은 역설적으로 대한민국 의료 전달체계의 전면적인 새 판 짜기를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군 복무기간 단축 협의와 같은 단기적 유인책을 넘어, 시니어 의사 채용 지원,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 정착, 그리고 권역별 책임의료기관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거점화 전략을 속도감 있게 실행해야 한다. 농어촌 주민의 건강권이 의료 수급 불균형의 ‘어쩔 수 없는 희생양’으로 방치되지 않으려면, 임시방편이 아닌 지역의료의 자생력을 키우는 구조적이고 냉철한 결단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글 | 백승리 기자(report@senioredupro.com)
“정책 뉴스에 대한 더 다양한 소식은 [종합뉴스 섹션]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